1940년 5월 10일 - 네델란드, 벨기에, 프랑스 점령
독일 기계화 사단은 엄청난 기동력으로 전격전 감행, 독일 공군의 지원까지 받으며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유럽을 모두 집어 삼켜 버림
새로 취임한 윈스턴 처칠은
유럽의 마지막 남은 동맹인 프랑스 마저 잃고 굴욕적인 퇴각
프랑스 해군을 공격해 사살하는 결정까지 하게되는 구석으로 내몰리게 됨
뒹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은 몰살 당하기 않은 것이 기적
30만명의 영국 원정군과 연합군이 탈출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독일 자신도 놀랄만큼 빠르게 유럽이 함락됨
1940년 7월 10일부터 1940년 10월 31일까지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영국 공군과 독일 공군 간의 전투
처칠, 히틀러에게 항복할 수는 없다
히틀러는 영국에게 협정을 제안
영국 내각 상당수도 독일과 협정 맺을 것을 주장
하지만, 처칠은 강경
히틀러 따위에게 항복은 없다
영국은 최강의 해군을 보유,
히틀러는 하늘을 장악하고 있던 독일 공군을 활용
해협을 건너는 영국 함선을 공격하여 보급선에 타격
2배가 넘는 공군력을 가지고 자신했던 헤르만 괴링, 공군 최고사령관은
히틀러에게 4일안에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4주안에 영국 공군을 괴멸시키겠다고 호언장담
윈스턴 처칠
영국 국민들에게 전쟁 임박을 경고하며,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강조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ei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준비된 영국, 자만한 독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독일 BF109와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우수한 전투기
키스 파크 소장의 지휘아래 30개 비행대대가 일사분란하게 출격
완벽한 영국 레이더망
다우닝 시스템 - 정교한 조기 경보 시스템
전투기사령부의 사령관인 고집쟁이 다우닝
체인홈 - 해안을 따라 배치된 21개의 레이더 탑 - 193Km 떨어진 비행기 탐지
체임홈 로우 - 30개의 작은 레이더 탑으로 저공비행 감시
30,000명의 자원봉사자들 - 편대의 규모와 고도를 육안으로 감지해서 밤낮으로 보고
40초 이내로 전투기사령부에 모두 취합됨
벤틀리 수도원의 전투기사령부 본부 관제실에서 모든 정보를 통합하여 지휘
독일 공군 정보부를 이끌던 베포 슈미트, 온통 거짓말만
독일 공군이 이길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만 전파
그냥 거짓말쟁이, 형편없는 정보력으로
괴링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함
독일 공군이 해협을 건너 도착하면
영국 공군은 항상 이미 마중나와 있음
매 공격마다 독일 공군은 큰 손실
베포 슈미트는 영국 공군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계속 거짓말
매우 부정확한 정보로 괴링은 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함
영국은 비행장, 전투기 수리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복구
영국 파일럿들은 대부분 구출,
독일 파일럿들은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힘
영국은 추락한 독일 전투기에서 정보를 취득하여 축적
전투기 생산속도도 영국이 독일의 두배가 넘게 생산
독일, 런던에 야간 폭격 시작
영국 남부의 방어가 튼튼하니 영국 북부를 공격해 보려는 독일의 시도도 실패
75대 비행기가 격추 당함 - 영국 전역의 방공망이 튼튼하다는 사실을 알게됨
급기야 저공에서 독일 폭격기를 호위 하라는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독일
더 많은 전투기를 잃은 독일
84대의 폭격기 들이 214대의 BF109, 43대의 BF110 호위를 받으며
레이더 탐지 범위 밑으로 침입하는 은밀한 기동으로 공습
중간 고도에서 대규모 폭격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 이었으나
이 방법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독일 공군은 모르고 있었음
형편없는 정보력
이 와중에 독일이 실수로 폭격을 하여 영국 민간인 사망
처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베르린 폭격
더 몰아 붙였으면 영국 공군이 밀려 났을지 모르는데
야간공습으로 전략을 바꿈
영국 공군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싸울 의지를 파괴해야 한다
영국의 도시들을 폭격한다
런던이 파괴되면, 시민들이 고집스런 처칠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 생각
니켈바인 - 야간공습 유도 시스템
폭격기 조종사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
런던 대공습 시작
1940년 9월 7일 아침 - 700대가 넘는 독일 공군기가 런던으로 진격
런던을 지키던 21개 영국공군 대대가 모조리 출격
1,000대가 넘는 항공기가 런던 하늘을 메움
저녁에 독일 폭격기들이 다시 폭격 시작
한 하루를 제외하고 57일간 계속해서 무차별 폭격
빈민층들의 처참한 피해
하지만 여론은 처칠을 응원
이 정도로는 내 집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아요, 어서 출근하세요
제공권을 확보해, 영국 상륙작전을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없는 독일
영국 공습은 더욱 더 맹렬해짐
하루에 5~6 차례 출격을 나가야 했던 영국 파일럿들에게는
야간공습은 한숨 돌릴 수 있었던 시간
독일 전술이 민간인 폭격이 아닌
영국 공군을 밀어내기 위한 작전을 계속 했으면
전세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름
끈질기게 버틴 영국의 승리
독일 공군의 마지막 주사위
9월 15일 오전 11시 145대, 13시 475대
독일 공군의 손실이 2배
영국 상륙작전을 위해 프랑스 해안에 집결 시켰던 상륙정과 병력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
바다사자 작전은 취소됨
윈스턴 처칠 - 항복하지 않기로 결정
휴 다우닝 - 승리를 가져온 무기를 만든 사람
키스 파크 - 11그룹 지휘관, 그 무기를 사용한 사람
프랑스 패배, 덩케르크 철수 이후로 나치의 유럽진격에 제동
히틀러는 소련으로 시선을 돌림
인류의 분쟁의 영역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적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have so many owed so much to so few.
파일럿들에게 보내는 윈스턴 처칠 총리의 찬사
당시 영국 공군의 40%는 외국인
독일에게 점령 당한 폴란드, 체코 파일럿들도 다수 참여